현재 연명 선택 '말기 환자 등' 제한…중단 83%가 가족이 '생명' 결정
의료계 "존엄사 합법화, 환자 살리려는 에너지 위축시킨다" 완강 반대
(서울=뉴스1) 유민주 원태성 기자 = "언니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어요. 언니도 피해자입니다."
난소암 진단을 받고 6년 넘게 투병 생활을 하던 A씨(당시 40세)가 남긴 유서 중 일부다. 그는 1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친자매 같은 사이었던 B씨(47)의 도움으로 지난 2020년에 생을 마감했다.
A씨는 사망 직전까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B씨는 A씨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렇게 피의자가 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는 피해자의 유서와 A씨 가족들의 선처 호소 덕분에 감형을 받았다.
A씨의 소원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 병이 호전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이고통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들 역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A씨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에 몸서리쳐야 했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지금 존엄사에 대한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야 하는 이유다. 환자 자의에 의한 '소극적 안락사', 즉'연명의료 중지'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합법화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조력사망' 또는 '적극적 안락사' 도입은 시기상조지만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공론화 어려운 '존엄사'···연명치료 중단 선택한 10명중 8명 결국 가족이 '죽음' 결정
김정은씨(여·가명)의 시아버지는 평소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두 아들의 반대로 돌아가실 때까지 연명치료를 받았다.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떠나보낼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전 말기암 남편을 떠나보낸 이하영씨(여·가명)는 "남편이 췌장암 진단받고 남은 시간이 한달 정도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곧 죽을 사람한테 다짜고짜 위급상황 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처음에는 질문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씨는 곧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 연명치료 거부 서류에 동의를 했다고 말했다.
국립연명의료기관에 따르면 지난 2018년~2022년 연명의료 중단으로 25만6377명이 숨을 거뒀다. 그중 21만2515명(83%)은 임종이 임박한 상태에서 본인의 의지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채로 연명치료 중단이 결정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 중 △환자 가족 진술로 환자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8만7031명 △환자가족 전원 합의로 결정되는 경우 7만688명 △임종 당일에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하는 경우 5만4796명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한환자는 1만5126명으로 5.9%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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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에 300명 이상 '죽음' 위해 스위스 향해"···존엄조력사법 논의 1년간 중단
해외에선 일부 국가들이 적극적 안락사를 택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법을 시행한 국가다. 이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 뉴질랜드, 스위스, 호주 일부 지역 등도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다만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은 국가가 다수다. 이에 스위스 등 국가로 '원정 안락사'를 오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스위스의 자살률은 1994년 기준 10만 명당 21.3명이었으나, 2016년에는 12.5명으로 감소했다. 이는 안락사를 허용했기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연명의료결정법보다 확대된 '조력존엄사법'이 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거의 1년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에 따르면 조력 대상자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경우이거나 말기환자인 경우, 스스로의 의사에 따른 결정이란 점이 인정받을 경우로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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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계 "생명 끝까지 지키는 게 존엄한 것"…'공적관리 필요' 목소리도
현재 존엄한 죽음을 추구하는 이들과 생명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엄사 합법화를 두고 팽팽히 맞서고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7월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력존엄사 입법화 찬반을 조사한 결과 8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력존엄사의 다른 말인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가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을 말한다.
의료업계는 자칫하면 존엄사 합법화가 의사들이 그 환자를 살리려고 끝까지 끌고 가는 에너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입법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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