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착각
베카 레비 지음
김효정 옮김
한빛비즈
『나이가 든다는 착각』은 이를테면 『공산당 선언』 같은 책이다. 하버드대 박사 출신의 예일대 심리학 교수가 썼지만 이론서가 아니다. 저자는 노화를 전면적으로 재정의하고, 나이에 따른 사회·경제·문화·의료적 차별 철폐를 촉구한다. 한국에선 2002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카피가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유행했다. 이 책은 광고 카피보다 더 급진적이다.
책에 따르면 ‘추하고 더럽다’ 등 부정적 연령인식을 깨고, ‘지혜롭고 너그럽다’ 등 긍정적 연령인식을 갖게 되면 노인의 삶과 생활은 혁명적으로 달라진다. 노인 건망증? 천만에. 특정 유형의 기억력은 나이가 들면서 더 좋아진다. 패턴 인식능력이 그중 하나다. 엑스레이에서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내고, 버섯이 숨어있는 곳을 귀신처럼 찾아내는 능력은 젊은이가 따라오기 힘들다.
쉰이 된 나이에 친구에게 빌린 운동화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수녀 마돈나 뷰너는 1982년부터 350회 이상 철인3종경기를 완주했다. 현재 그는 91세다. 노인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묻자 수녀는 “지혜와 은혜” “숙성된 와인”이라 답했다. ‘긍정적 연령인식’은 이렇게 힘이 세다.
혹시 긍정적 인식 때문에 건강한 게 아니라, 건강해서 그런 인식이 생긴 게 아닐까. 저자는 인과관계 추적을 위해 50세 이상의 실험군을 대상으로 20년에 걸친 장기 연구를 했다. ‘긍정적 연령인식’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 연령인식’을 가진 사람에 비해 기능적 건강이 더 좋았다. ‘노화’ 그 자체보다 ‘연령인식’이 노년의 신체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단어와 긍정적 단어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 화면에 보여준 뒤 특정 동작을 하게 하는 실험도 했다. 83세 여성은 긍정적 단어에 노출된 그룹에 속해 한 달 동안 매주 실험에 참여했다. 첫 주엔 다섯 번 연속 의자에서 일어나는 동작을 힘들어했지만 셋째 주부터는 자신감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상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아침에 침대에서 더 가뿐하게 일어나고, 도서관 계단도 수월하게 올라가게 됐다. 컴퓨터 화면에 스쳐 간 ‘원기왕성한’ ‘튼튼한’ 등의 긍정적 단어를 본 영향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이 들어 운동을 시작하는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영국 노팅엄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50대에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도 수십 년 달리기를 해온 고령의 선수만큼 건강해질 수 있다. 노인은 다치거나 질병을 앓은 뒤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못된 믿음’이다. 장기 조사에서는 노인의 상태가 악화하고 회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간격을 좁혀 조사한 결과 81%는 1년 이내에 완전히 회복했다.
저자의 연구는 긍정적 연령인식과 수명의 관계로 집대성된다. 긍정적 인식을 가진 집단은 부정적 인식을 가진 집단과 비교해 평균 7.5년을 더 생존했다. 연령인식이 흡연(3년)이나 혈압(4년)보다 수명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변수인 셈이다.
연구는 연령차별에 대한 규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연령차별은 인종차별, 성소수자차별보다 더 심각하고 뿌리 깊다. 미국에서 ‘검둥이’는 금기어가 됐지만, ‘부머’와 ‘꼰대’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차별적 언어다. 60세나 65세가 되면 강제로 퇴직하는 건 제도화된 차별이다. 저자는 65세가 된 아인슈타인을 채용하지 않을 거냐고 되묻는다. 집단 인식-동원-항의로 이어지는 ‘노인해방운동’의 전략도 제시한다. 저자는 사회 구성원의 25%가 티핑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24%는 50대 이상. 주름살과 백발이 추앙받는 세상, 노인해방운동의 성공도 멀지 않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곰곰이 되씹어 볼 만한 논리와 주장이다. 원제 Breaking the Age Code.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http://n.news.naver.com/article/353/0000045485?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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