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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신부, 동방신기랑 다른 부족이에요?

인터뷰]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신부

▲멕시코 캄페체 교구 성 프란치스코 성당 주임 최강 신부 ⓒ한수진 기자

1517년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선교의 부푼 꿈을 안고 미지의 대륙, 아메리카로 향했다. 긴 항해 끝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멕시코 동쪽 해안도시 캄페체. 배에서 내린 그들은 무사한 항해에 감사하며 미사를 봉헌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봉헌된 첫 미사였다. 그로부터 493년 후, 또 다른 이방인 사제가 같은 자리에 발을 내딛었다. 멕시코 캄페체 교구의 성 프란치스코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한국외방선교회의 최강 신부다. 사제 부족으로 어려움에 빠진 캄페체 교구의 간절한 요청 때문이었다. 3년 만에 휴가를 받아 고향을 방문한 최강 신부를 서울 성북동 한국외방선교회 본원에서 만나 멕시코의 태양처럼 뜨겁고 눈물 쏙 빼도록 감동적인 선교 이야기를 들었다.

최 신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최강일기’(cafe.daum.net/frchoikang)에는 최 신부가 성 프란치스코 본당 신자들과 지내는 일상이 글과 사진으로 올라와 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카페에 올라온 글과 사진을 구경하다가 ‘헉’ 소리가 날 만한 사진을 발견했는데, 최 신부가 머리를 2대 8 가르마로 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청년 신자들과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는 사진이었다. 무대 바로 앞 객석에 앉은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은 박수를 치며 웃느라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사진이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하자, 최 신부가 그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본당 청년들이 정말 궁금한 눈으로 ‘신부님, 한국인 맞아요?’ 하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맞다고 했더니, ‘그럼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하고 신부님은 다른 부족이에요?’ 하고 또 묻는 거예요. 아무리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해도 고개를 갸웃거리던 청년들은 싸이가 유명해진 다음에야 ‘아, 신부님은 싸이랑 같은 부족이구나’라고 믿었죠, 하하하.”

본래 멕시코 땅에서 살던 여러 부족과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이 500년간 섞여 살아온 그들에게 최 신부와 아이돌 가수가 다른 ‘부족’으로 이해되는 건 당연했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아담한 이목구비, 적당히 통통한 몸집은 누가 봐도 예쁘장한 동방신기보다는 싸이 쪽 혈통이었다. 그래서 최 신부는 내친김에 제의를 벗고 캄페체 스타일의 완벽한 싸이로 변신했다. 성탄예술제에 이어 어버이날에도 어르신 신자들을 성당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공연을 선보였다. 신자들의 반응은 진짜 싸이를 만난 것처럼 뜨거웠다.

물론 최 신부의 사목활동이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데만 치중한 건 아니었다. 최 신부는 동네 골목에 제대를 차려놓고 거리에서 미사를 드리기도 하고, 신자들의 집에 찾아가 출장 고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청년 신자들이 싸이와 닮은 최 신부를 ‘빠드레 구아뽀(잘생긴 신부님)’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자들을 향한 최 신부의 진심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 작년 성탄예술제에서 청년 신자들과 공연하는 최강 신부 ⓒ최강

신자들과 함께 미사 봉헌하는 이 거리가 ‘본당’이다

거리 미사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신자들을 말씀 안으로 초대할까” 하는 최 신부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성 프란치스코 본당은 등록된 신자 수가 1만 1천 명에 이르는 큰 본당이지만, 미사에 나오는 신자 비율은 20~30%밖에 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초대를 해서 미사 참석률이 높아져도 몇 주만 지나면 요요현상처럼 다시 제자리가 됐다.

“살다보면 하느님께서 머리를 한 대 치시면서 깨달음을 주시잖아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고 강조하던 내가 왜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들을 교회로 오라고만 하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교회를 옮겨갈 생각은 못하고 있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최 신부는 본당 관할 구역 중에서도 냉담 비율이 높은 빈곤층 주거지역을 찾아 제대를 차리고 미사를 시작했다. 음향 시설도 없이 확성기로 복음을 읽고 성가를 불렀다. 익숙한 기도 소리가 동네 골목에서 울려 퍼지는 낯선 장면에, 동네 사람들은 제대 앞으로 가까이 다가올 생각도 못하고 집 앞에 의자를 내다놓고 미사를 구경했다. 거리 미사가 두 번, 세 번 계속되자 신자들의 의자가 점차 제대에 가까워졌고, 결국엔 다 같이 제대 앞으로 모여 미사를 봉헌하게 됐다.

“처음엔 신자들도 많이 낯설어 했죠. 교회가 옮겨왔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교회를 가리키는 라틴어 ‘에클레시아(ekklesia)’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회중을 뜻해요. 그러니 저기 서 있는 빈 건물이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신자들과 함께 성사를 거행하는 바로 이곳이 성 프란치스코 본당이 되는 거예요.”

최 신부는 본당을 거리로 옮겨오면서 본당 신자 중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많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게 됐다. 당뇨병 환자 비율이 높은 나라에 속하는 멕시코는 그만큼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 환자의 수도 많다. 최 신부가 거리 미사에서 만난 에또르 씨도 당뇨합병증으로 두 다리를 절단하고 8년째 해먹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의 소원은 자신이 젊었을 때처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거였는데, 그날 그의 오랜 소원이 이뤄진 것이었다. 최 신부는 에또르 씨와 같은 신자들을 만나면서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과 나누며 ‘내가 너희에게 했던 말을 잘 기억하라’고 당부했던 날의 가르침이 거리 미사에서 온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을 찾아가고, 사랑하며 겪는 ‘행복한 고통’

에또르 씨와 같은 신자들을 더 만나기 위해 최 신부는 거리 미사와 별도로 본당 신자들과 정기적인 환자 방문을 시작했다. 눈물이 많아서 텔레비전 드라마도 못 본다는 최 신부는 25년, 30년 만에 고해성사를 하고 하느님과 화해하는 기쁨을 맛보는 이들을 마주하면서 수없이 눈물을 쏟았다.

“한 할머니는 저와 신자들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나올 때까지 말씀도 못하셨어요. 다음에 또 올 테니 울지 마시라고 달래고 돌아서는데, 그분이 내 어머니이고 같은 주님의 자녀라는 생각에 문턱을 넘을 수가 없었어요. 다시 돌아가서 안아드리고 또 문턱을 넘지 못해 다시 돌아가고. 이렇게 문턱을 한 번에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구나. 제가 만약 본당 신자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음이 아팠을까. 사랑은 기쁜 것만이 아니라 고통스럽기도 한 것이구나. 행복한 고통은 사랑을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분께 배웠어요.”

처음에는 환자 방문 횟수를 한국의 본당 대부분이 그렇듯 한 달에 한 번으로 정했는데, 환자들이 너무 많아 2주에 한 번으로 늘렸다가, 1주일에 한 번 매주 화요일로 고정했다. 환자 방문에 동행하는 신자의 수도 두세 명에서 점점 늘어나 이제는 “본당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가 됐다. 최 신부는 “그래서 우리 본당 신자들은 교황 프란치스코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에 너무나 행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 신자들에게 “우리가 정말로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고, 그만큼 본당 공동체 안에서 만족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그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더 큰 사랑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제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최 신부의 삶은 누구라도 질투가 날만큼의 행복과 충만함으로 가득 차 보였다.

▲ 거리미사를 봉헌하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 신자들 ⓒ최강

더 많은 젊은이들이 밖으로 눈을 돌리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길

그러나 그도 사제의 길을 걷기 전까지는 두려움으로 주저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어차피 떠나는 길, “지리적으로나 영성적으로 더 멀리 떠나보고 싶어서” 찾아갔던 한국외방선교회였지만, 막상 성소 모임을 나가면서는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서기까지는 말이다.

“아버지가 췌장암 진단을 받으시고 두 달 반 뒤에 돌아가셨어요. 그 시간동안 자신의 죽음을 참으로 의연하게 받아들이셨고, 자식들에게 유언 세 가지를 남기셨어요. 첫째, 나는 흙으로 빨리 돌아가야 하니 관을 쓰지 말고 바로 묻어라. 둘째, 죽은 자의 행렬이 산 자를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되니 길을 돌아가라. 셋째, 죽음이 삶의 스승이다. 매일 죽음을 잘 묵상하면서 살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답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소원으로 하느님 대전으로 가는 길에 외롭지 않도록 봄비를 내려주시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뱉으시고 잠시 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평생을 선하게 살아오신 분에 대한 하느님의 마지막 선물이었던 거죠. 그날 빗소리를 들으면서, 아버지의 말씀을 더 깊이 받아들이고 질문하고 답을 찾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로 마음을 정했어요.”

간혹 사람들은 최 신부에게 묻는다. 다시 태어나도 선교 사제의 길을 갈 거냐고. 그에 대한 최 신부의 답은 “선교 사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다. 고향과 다른 기후나 문화 같은 외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선교지의 백성처럼 살고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어도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처지”를 견디는 것이 힘들어서다. 최 신부는 “세련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냥 외로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죽음에 삶의 해답이 있다는 부친의 깨달음처럼, 하느님은 바로 그 외로움의 순간에 지혜의 빛을 밝혀주셨다.

“한밤중에 사제관으로 마약에 잔뜩 취한 청년이 찾아오더니, 허리춤에 꽂은 권총을 보여주면서 ‘오늘 밤 내가 이걸 사용하지 않게 도와 달라’는 거예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난 에스테반 신부야. 넌 이름이 뭐니? 내가 도와줄게’ 하고 대화를 시작했어요. 그 친구가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의 근육이 움찔움찔 하고, 온 신경을 그 친구에게 쏟았죠. 2시간쯤 대화를 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겨우 20분이었어요. 앞으로 가장 가난한 신자가 그의 어려움과 고통을 하소연할 때, 내가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게 선교사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깨달음의 순간이에요.”

요즘 최 신부의 기도 지향이자 큰 관심은 이러한 값진 순간에 한국 교회의 젊은 평신도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최 신부는 특히 한국 교회의 과도한 성직자 중심주의로 인해 평신도들이 하느님에게 받은 재능을 교회 안에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최 신부는 “젊은이들이 밖으로 눈을 돌려 다양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배우면 좋겠다. 그들이 건강한 교회관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한다면 선교지와 한국 교회 양쪽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의 진심이 멕시코 교회의 신자들에게 전해진 것처럼, 언젠가 한국 교회의 청년들에게도 전해질 거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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